걸어온 50년, 함께할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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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이천줄다리기

◎ 6천명이 함께 어울렸던 이천 줄다리기줄다리기는 석전(石戰)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놀이 중에 하나였다. 줄다리기는 보통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한 해 동안의 안녕과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주로 중부 이남의 논농사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줄다리기의 농경 의례적인 성격은 줄의 모양을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농경에서 없어서는 안될 비나, 비의 신인 용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서도 성행하였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의 줄다리기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줄다리기는 보통 마을의 남녀가 서로 편을 나누거나, 한 마을을 동서, 또는 위 아래로 ..

04. 이천거북놀이

◎ 거북놀이의 유래거북놀이는 팔월 추석날 저녁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펼쳐지는 대표적인 세시 풍습 민속 놀이다. 거북놀이는 원래 용인·안성·평택을 비롯한 경기 남부 지역과 충주·음성·예산·홍성 등 충청남북도 지역에서 널리 연희되었으며, 강원도 일부와 전남 해남, 경남 함안 등지에서도 연희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민속 놀이들이 그렇듯 거북놀이 역시 농촌사회의 급격한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밀려 모습을 감추었다가, 지난 70년대 초 이천에서 먼저 재현되어 널리 알려지게 됨으로써 이천을 대표하는 민속 놀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거북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신라 문무왕 때부터 유래되었다는 설, 고려 때부터라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것이나 뚜렷한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

03. 설봉서원, 이천향교, 그리고 월전미술관

◎ 설봉서원(雪峯書院)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서원은 성균관, 향교와 함께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교육 기관으로, 전국 각 도시에 분배된 국립의 향교와는 대비되는 사립학교로서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성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과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 조선 중기 사화(士禍)를 비롯한 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은 지방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배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의 기능까지 통합한 서원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 서원의 유래이다. 서원에서 교육의 목표는 인품이 훌륭한 성현을 본받고 그러한 관리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성..

02. 안흥지와 애련정이 다시 서기까지

정자(亭子)는 조선의 선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정자에서 자연을 벗하며 담소를 나누고 문화를 향유하였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거문고를 뜯으며 여가를 즐겼던 선조들의 풍격(風格)이 정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옛 문헌에 이천읍내에는 ‘애련정’이란 정자가 있었으니, 중종(中宗)과 정조(正祖) 등이 이 정자를 찾아 경치를 감상한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유명했던 명소이다. 임원준(任元濬)이 지은 기문(記文)을 보면 원래 객사 남쪽에 정자가 있었으나, 작고 낮아서 볼품이 없는데 여러 명의 부사가 바뀌어도 수리하지 않다가, 1474년 이천 부사로 부임한 이세보(李世珤)가 새로 정자를 건립하였으며, ‘애련정’은 이세보가 당시 영의정이었던 신숙주(..

01. 성천 류달영의 애향활동

류달영(柳達永,1911년 4월 8일~2004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의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농학자, 사회 운동가, 재건국민운동본부장(새마을운동의 전신 창립자, 국무총리급), 수필가, 서예가, 서울대학교 교수이다. 1911년 5월 6일(음 4월 8일)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고담리에서 류홍구, 유강릉 부부의 장남으로 출생, 호는 성천(星泉)이다. 1928년 죽남공립보통학교(현 설성초등학교) 졸업(1회 졸업생),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김교신의 애제자였으며 나중에 김교신과 사돈이 되었다.1936년 수원고등농림학교(현재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72년에 건국대학교에서 명예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성서조선 사건으로 잡혀 김교신·함석헌..

02. 충신과 구국운동가

◎ 어재연 장군(魚在淵, 1823~1871)어재연(魚在淵)은 신미양요 때 미국함대를 맞아 강화도 광성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전을 하여 미국의 침략을 막아낸 무관이다. 어재연은 본관은 함종(咸從)이고, 자는 성우(性于)이다. 1823년(순조 23) 아버지 어용인(魚用仁)과 어머니 기계 유씨(杞溪 兪氏) 사이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탄생지는 당시 음죽현 상율면 산성리 팔성산 아래 음달말로, 충장공 어재연 장군이 태어난 생가는 아직도 그 원형이 보존되여 있다. 초가집 생가는 경기도 중요민속자료 127호로 지정되여 보호 관리되고 있고, 주소는 지금의 이천시 율면 산성리 74번지이다. 그의 아버지는 관직이 없었으나, 할아버지 어석명(魚錫命)은 인동부사(仁同府使)까지 지냈다. 어재연의 형인 어재호(魚在濠..

01. 설봉서원 제향 인물

◎ 장위공(章威公) 서 희(徐熙, 942~998) 우리 역사상 짝을 찾기 힘든 뛰어난 외교 전략가인 서희는 이천 출신으로 고려 성종 때 인물이다. 성종 12년 소항덕(簫恒德)이 거느린 거란의 대군이 고려를 침략하여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혼자 몸으로 호랑이굴과도 같은 적진에 들어가 적장과 담판하여 적의 대군이 스스로 물러가도록 함으로써 나라를 구해냈다. 서희는 광종 때 내의령(內議令)을 지낸 서필(徐弼)의 아들로 942년(태조 25)에 태어났다. 서희의 할아버지인 서신일(徐神逸)은 이천 서씨의 시조로 통일신라 말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효양산에 들어와 살면서 후진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서신일은 나이 팔십이 다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사냥꾼의 화살..

04. 일제강점기 이천의 독립운동

◎ 3·1운동과 이천1919년 3월 1일, 역사적인 조선 독립 선언과 함께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이 날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식에 이어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군중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를 하였으며, 같은 날 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6개 도시에서도 시위 운동이 일어났다. 이튿날인 3월2일에는 경기도 개성과 충남 예산, 8일에는 대구, 10일에는 전남 광주와 강원도 철원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3월 하순에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시위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천 지역은 3월 30일 마장면의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하루 이틀의 간격을 두고 신둔면·읍내면(이천읍)·백사면·모가면·대월면·부발면 등지로 확대되었다. 먼저 마장면..

03. 이천의 의병항쟁과 이천충화사건

◎ 전기 의병과 이천수창의소의 의병 활동1896년(고종 33) 1월부터 여름까지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의병 운동은 일본으로 대표되는 외세에 정면으로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난 한말 의병 항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의병항쟁에 불을 당긴 것은 1895년에 일어난 명성왕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과, 이 해 음력 11월에 공포된 단발령이었다. 전기 의병은 대부분 재야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김하락(金河洛)을 비롯한 이천 의병의 중심 인물들 역시 서울에 거주하던 유생들이었다. 김하락과 구연영·김태원·신용희·조성학 등 다섯 명의 동지들은 단발령이 내려지자 즉시 경성을 출발해서 하루만인 1896년 1월 1일 이천에 도착하였다. 김하락과 동지들은 이천에 도착하는 즉시 화포군 도령장 방춘식(方春植)과 상의하여..

02. 고려 태조가 내린 이름, 이천

통일신라 후기에 와서 왕실과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자, 각 지방마다 힘있는 호족 세력들이 등장하게 된다. 문란한 정치와 과다한 세금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전라도를 근거지로 한 견훤(甄萱)과 철원 지방의 궁예(弓裔)가 각각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내세우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다. 궁예의 휘하에 있던 왕건(王建) 역시 경기도 개성 지방에 뿌리를 둔 토호 세력이었고, 당시 이천 지방에는 서희(徐熙)를 배출한 이천 서씨들이 대표적인 토호 세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때 황무현이었던 이 땅은 고려왕조 초부터 ‘이천(利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천이란 지명이 생겨나게 된 유래는 고려의 건국 과..